이스라엘의 국왕 시대는 기원전 11세기경 사사 시대가 종결되고 중앙 집권적 체제가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초대 국왕인 사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이스라엘 지파들을 결집하여 블레셋의 위협에 맞섰으나, 신앙적 결함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몰락하였다. 뒤를 이은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치자로 평가받으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지혜로운 통치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여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구가하였으나, 말기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은 왕국 분열의 씨앗이 되었다.
솔로몬의 사후인 기원전 930년경,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실정에 반발한 북쪽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 1세를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남쪽의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하며 남유다를 구성하였다. 이로써 히브리 민족은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비극과 외세의 침략을 동시에 겪는 격동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총 19명의 국왕이 통치하였다. 북이스라엘은 빈번한 쿠데타로 인해 왕조가 자주 교체되는 특징을 보였으며,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발전하였다. 특히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 시대에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나 바알 신앙의 유입으로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예후의 혁명을 통해 왕조가 교체된 이후에도 국력은 점차 쇠퇴하였으며, 마지막 왕 호세아 시대에 이르러 앗시리아의 대규모 침공을 견디지 못하고 패망하였다.
남유다 왕국은 북이스라엘보다 약 136년을 더 존속하며 다윗의 혈통을 계승한 국왕들이 통치하였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달리 단일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하였으며, 히스기야와 요시야 같은 왕들은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국력을 회복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인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이의 패권 다툼 속에서 위기를 맞이하였고, 결국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2세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가면서 멸망하였다.
이스라엘의 역대 국왕들은 고대 근동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민족의 생존과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각기 다른 통치 방식을 전개하였다. 비록 두 왕국은 모두 외세에 의해 멸망하고 백성들은 바빌론 유수를 겪게 되었으나, 이 시기에 확립된 다윗 왕조의 상징성과 신앙적 전통은 훗날 유대교의 핵심 사상인 메시아 대망 사상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역사는 구약성경의 열왕기 및 역대기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인류 문명사와 종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