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년

586년은 6세기 후반의 해로, 동아시아와 지중해 세계 등지에서 국가 체제의 정비와 영토 분쟁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평원왕 28년에 해당하며,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의 동황성에서 장안성(현재의 평양 시가지 지역)으로 옮긴 해이다. 장안성은 외성, 중성, 내성, 북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규모의 평지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기능을 통합한 형태였다. 이 천도는 왕권을 강화하고 대외적인 방어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중국 대륙에서는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통합하기 전,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수 문제 양견은 대흥성을 축조하고 중앙 집권적 관료제를 정비하며 북방 유목 민족과의 관계를 조절했다. 586년 당시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외교적 마찰을 빚기 시작했으며, 이는 훗날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으로 이어지는 긴장 관계의 서막이 되었다. 수나라의 등장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아시아와 비잔티움 제국 접경 지역에서는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간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586년 봄, 양측 군대는 메소포타미아 인근의 솔라콘에서 격돌했다. 이른바 솔라콘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장군 필리피쿠스가 이끄는 군대는 사산 왕조의 군대를 격파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비잔티움 제국이 동부 전선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으나, 양국의 오랜 소모전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서유럽의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서고트 왕국의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서고트의 강력한 군주였던 레오비길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레카레드 1세가 왕위에 올랐다. 레오비길드는 영토 확장과 중앙 집권화를 통해 왕국의 기반을 닦았으며, 뒤를 이은 레카레드 1세는 훗날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왕국 내 로마계 주민들과의 종교적 통합을 꾀하게 된다. 586년의 왕위 계승은 서고트 왕국이 가톨릭 국가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종교 및 문화적으로는 시리아 지역에서 '라불라 복음서'가 완성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성 요한 자그바 수도원에서 필사된 이 복음서는 시리아어로 작성되었으며, 정교한 삽화가 포함되어 있어 초기 기독교 예술과 서체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확고히 자리 잡으며 사찰 건립과 불경 번역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이는 각국의 통치 이념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