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선군

숭선군(崇善君, 1639~1690)은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제16대 국왕 인조의 서차남이자 다섯째 아들이다. 이름은 숙(潚), 자는 자용(子容)이다. 어머니는 인조의 총애를 받았던 귀인 조씨(폐귀인 조씨)이며, 효명옹주의 친동생이자 낙선군의 친형이다. 인조 재위 말기에 태어나 왕실의 각별한 관심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1651년(효종 2) 어머니 귀인 조씨가 효종과 인선왕후를 저주하고 종실을 해치려 했다는 이른바 '귀인 조씨 옥사'에 휘말리면서 숭선군의 운명은 급격히 변하였다. 귀인 조씨는 사약을 받고 처형되었으며, 숭선군 역시 그 연좌제로 인해 관작을 박탈당하고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진도로 이배되는 등 오랜 기간 고초를 겪으며 정치적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유배 생활은 현종 대에 이르러 점차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강화도로 이배된 후 왕실의 배려로 유배지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며, 1684년(숙종 10)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면되어 도성으로 복귀하였다. 숙종은 숭선군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으며, 종친으로서의 예우를 다하도록 조치하였다.

숭선군의 부인은 영의정 장유의 딸인 영풍군부인 장씨이다. 슬하에 아들 항양군 이정, 화양군 이함과 여러 딸을 두었다. 그는 1690년(숙종 16)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효정(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의 묘역은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남고리에 조성되어 있으며,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숭선군의 생애는 조선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과 그에 따른 연좌제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머니의 정치적 야심과 몰락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유배객 신분이 되었으나, 이후 국왕들의 배려로 복권되어 종친의 지위를 되찾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상세히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