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년은 17세기 중반의 시기로, 서기 1651년이자 조선 효종 2년에 해당한다. 간지로 보면 신묘년(辛卯年)이며, 청나라에서는 순치 8년이었다. 이 해는 전 세계적으로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법적, 정치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전후 복구와 체제 정비가 이어졌고, 서구권에서는 내전의 종결과 해상권 장악을 위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조선에서는 민생 안정을 위한 조세 제도 개혁인 대동법의 확대 시행이 주요한 내정 현안이었다. 영의정 김육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충청도 지역에 대동법이 실시되었으며, 이는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 농민의 부담을 경감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또한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론을 제기하며 군비를 확충하고 어영청을 개편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힘썼다. 경제적으로는 화폐 유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유통을 시도하는 등 국가 재건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내전이 종결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9월 3일 우스터 전투에서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군이 찰스 2세의 군대를 격파하며 사실상 내전이 끝났다. 패배한 찰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공화정 체제인 잉글랜드 연방의 권위가 더욱 확고해졌다. 또한 10월에는 항해조례(Navigation Acts)를 제정하여 영국과 그 식민지로 수입되는 물품은 반드시 영국 선박이나 생산국의 선박으로만 운송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네덜란드의 중개무역에 타격을 주고 해상 패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서양 철학사 및 정치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인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이 이 해에 출간되었다. 홉스는 이 책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 상태를 가정하고,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는 근대 국가의 주권 개념과 사회 계약설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영국의 정치적 혼란 상황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결과물이었다.
일본 에도 막부에서는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쓰나가 4대 쇼군으로 취임하였다. 이에미쓰 사후 유이 쇼세쓰가 주도한 막부 전복 음모인 ‘게이안의 변’이 발각되어 진압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도 막부는 낭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무력에 의한 통치인 무단 정치에서 유교적 덕목과 법치를 강조하는 문치 정치로 통치 방식의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