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성

박희성(朴熙成, 1896~1937)은 일제강점기 시기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항공 선구자이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총장 노백린 등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스에 설립한 한인비행사양성소에서 비행술을 배우며 조국 독립을 위한 공중전 역량을 갖추는 데 헌신하였다.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민족의 실력 양성이 독립의 지름길임을 깨닫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20년 2월, 박희성은 노백린과 곽림대 등이 주도하여 세운 윌로스 한인비행사양성소의 제1기생으로 입교하였다. 당시 윌로스 비행학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한 공군 창설의 모태가 되는 기관이었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훈련에 매진하였으며, 같은 해 7월 7일에는 이용근, 이초 등 동료들과 함께 첫 단독 비행에 성공하여 한인 비행사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21년 5월, 박희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육군 비행사 소위로 임명되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군 계급을 부여받은 최초의 비행사들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그는 미주 지역 한인 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비행 기술을 연마하며, 장차 벌어질 일제와의 독립 전쟁에서 공중 공격을 담당할 핵심 인력으로 평가받았다.

비행학교가 경영난으로 폐교된 이후 박희성은 미주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하다가 1923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기수로 취업하여 기술자로 근무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비록 비행사로서의 직접적인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그는 미국에서 습득한 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국내 산업 현장에서 소임을 다하며 민족의 역량을 보존하고자 노력하였다.

박희성은 1937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활동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윌로스 비행학교의 기록과 임시정부의 관보 등을 통해 그의 업적이 증명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한국 항공사와 독립운동사에서 '하늘의 독립군'으로 불리며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