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의(朴東儀, 1907~1994)는 일제강점기 당시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제의 식민 통치에 반감을 품고 성장하였다. 그는 부산 제2상업학교(현 부산정보기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참여하며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7년 박동의는 부산 제2상업학교의 동맹휴학을 주도하며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았으나, 이를 계기로 단순한 학생 운동을 넘어 조직적인 항일 투쟁가로 거듭났다. 이후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청년 및 노동자 조직을 건설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밀양과 부산 지역을 거점으로 항일 비밀 결사를 조직했다. 박동의는 격문을 살포하고 대중 강연을 통해 민중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여러 차례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0년대에도 박동의는 굴하지 않고 적색노동조합 건설 운동 등에 관여하며 노동 현장에서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조국 광복을 동일 선상에 두고 활동하였으며, 계속되는 고문과 투옥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감옥 안에서도 동지들과 결속하며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는 기개를 보였다.
광복 이후 박동의는 사회주의 계열 활동 이력으로 인해 정당한 평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조국 독립에 기여한 공로만큼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동의의 생애는 이념을 떠나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