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성(朴基成, 1907~1991)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에 헌신한 군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죽산이며, 경기도 신천 출생이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력 항쟁과 첩보 활동을 전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28년경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박기성은 본격적으로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34년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을 졸업하였으며, 이후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거치며 체계적인 군사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의열단과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며 실전 경험을 쌓는 동시에 한인 청년들의 군사 훈련을 담당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박기성은 이에 합류하여 제2지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시안(西安)과 부양(阜陽) 등지를 거점으로 삼아 적 후방에서 정보 수집, 포로 심문, 선전 활동 등을 수행하였다. 특히 일본군 내의 한인 병사들을 탈출시켜 광복군에 입대시키는 모병 사업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지휘하며 실질적인 전력 강화에 기여하였다.
광복 이후 박기성은 고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육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국방경비사관학교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임용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도 참전하여 국가를 수호하는 데 힘썼다. 퇴역 이후에는 독립유공자로서 후진 양성과 독립정신 선양에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박기성은 1991년 9월 14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생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항일 투쟁을 이어간 전형적인 독립군 장교의 표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