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991년은 20세기의 세계사적 흐름을 뒤바꾼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냉전 체제의 핵심 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었던 양극 체제가 종식되었고, 미국 주도의 단일 패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중동에서는 걸프 전쟁이 발발하여 첨단 무기가 동원된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으며, 정보 통신 분야에서는 월드 와이드 웹(WWW)이 대중에게 공개되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인터넷 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국제 사회의 가장 큰 사건은 단연 소련의 해체와 냉전의 완전한 종식이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이튿날 소련 최고회의가 연방의 해체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1922년 건국된 소련은 15개의 독립 국가로 쪼개지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앞서 7월에는 동구권의 군사 동맹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한편 연초인 1월에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전개하여 압도적인 화력과 공군력으로 약 한 달 반 만에 이라크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한반도 정세에 있어서도 1991년은 매우 상징적인 해였다. 9월 17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UN)에 동시 가입하며 국제 사회에서 각자의 실체를 인정받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어 12월 13일에는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대한민국 국내 정치적으로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선거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구·시·군의회 의원 선거와 광역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짐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이 다시 마련되었다.

한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굵직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3월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알을 채집하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같은 달 구미 공단에서 유출된 페놀이 낙동강 상수원을 오염시킨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발생해 환경 문제에 대한 국민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4월에는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5월 한 달간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민주화 인사들의 연이은 분신이 이어지는 이른바 '분신 정국'이 형성되었다. 한편 8월 14일에는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인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여, 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와 인권 운동의 거대한 촉매제가 되었다.

문화 및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현대 사회의 뼈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8월 6일,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팀 버너스리가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를 대중에게 공개하면서 누구나 정보망에 접근할 수 있는 월드 와이드 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는 훗날 전자상거래, 소셜 미디어 등 대대적인 디지털 혁명의 근간이 되었다. 한국 대중문화 및 방송계에서는 12월에 서울방송(SBS)이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하면서 기존 KBS와 MBC의 양대 공영방송 체제를 깨고 본격적인 상업 민영방송 시대가 열렸으며, 이는 한국 방송 산업의 경쟁 체제 도입과 대중문화 콘텐츠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