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비아 공화국은 1795년부터 1806년까지 현재의 네덜란드 지역에 존재했던 공화국이다. 기존의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을 계승하였으며, 프랑스 혁명 전쟁의 여파로 세워진 프랑스의 자매 공화국들 중 하나였다. '바타비아'라는 명칭은 고대 로마 시대에 해당 지역에 거주했던 게르만 부족인 바타비족에서 유래했다. 이 시기는 네덜란드 역사에서 근대적 국가 체제로 이행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공화국의 수립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 내부의 애국파(Patriotten) 운동과 프랑스군의 침공이 결합된 결과였다. 1795년 1월, 프랑스군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 네덜란드로 진격하자 당시 세습 집정이었던 빌럼 5세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애국파 세력은 프랑스의 지원 아래 구체제를 전복하고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 과정은 다른 혁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혈 사태가 적었기에 이른바 '벨벳 혁명'적 성격을 띠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바타비아 공화국은 중앙집권화와 민주적 개혁을 시도했다. 1798년에 제정된 헌법은 네덜란드 역사상 첫 번째 성문 헌법으로, 이전의 느슨한 주권 연합체였던 연방 구조를 타파하고 단일 국가 체제를 지향했다. 또한 정교분리, 신앙의 자유, 성인 남성 시민에 대한 참정권 부여 등의 급진적인 조치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권력 구조를 둘러싼 온건파와 급진파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이는 1798년과 1801년에 발생한 쿠데타로 이어지는 등 정국 불안이 계속되었다.
대외적으로 바타비아 공화국은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이는 국가적 경제 손실로 연결되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결과, 당시 해상 강국이었던 영국과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론(스리랑카)과 케이프 식민지 등 주요 해외 거점을 영국에 빼앗겼으며, 네덜란드의 핵심 경제 기반이었던 해상 무역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또한 프랑스 군대의 주둔비 지원과 막대한 전쟁 배상금 부담은 공화국의 재정을 파탄 위기로 몰아넣었다.
공화국의 종말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권력 강화와 함께 찾아왔다. 나폴레옹은 바타비아 공화국이 자신의 통제에 충분히 따르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보다 확실한 지배를 위해 군주제로의 전환을 압박했다. 1805년 루트허르 얀 스힘멜페닝크가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의장으로 취임하여 통치했으나, 1806년 나폴레옹은 결국 공화국을 폐지했다. 그 대신 자신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를 국왕으로 하는 홀란트 왕국을 수립함으로써 바타비아 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