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룽팅

루룽팅(陸榮廷, 1859~1928)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에 활동했던 중국의 군벌로, 구광시파(舊廣西派)의 영수이다. 자는 아오(亞五)이며 광시성 무밍현 출신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그는 유랑 생활을 하다 비적 떼에 합류하여 두목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884년 청불전쟁이 발발하자 항불 의용군에 투신하였으며, 이후 청나라 정규군에 편입되어 국경 수비와 치안 유지에서 공을 세우며 군사적 기반을 닦았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루룽팅은 광시성의 실권을 장악하고 부도독에 취임하며 혁명 세력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광시 도독의 자리에 올라 자신의 군사 조직을 강화하였으며, 광시성 전역을 통치하는 강력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청나라 시절부터 다져온 인맥과 무력을 바탕으로 광시 지역의 독보적인 지배자로 군림하며 이른바 구광시파 군벌의 시대를 열었다.

위안스카이가 황제 체제를 선포하며 권력을 독점하려 하자, 루룽팅은 1916년 호국전쟁에 참여하여 위안스카이 타도에 앞장섰다. 그는 광시의 독립을 선포하고 군사를 일으켜 인접한 광둥성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광열무독무(兩廣閱武督撫)라는 직책을 맡으며 광둥과 광시 두 성을 아우르는 남부 지역의 강력한 맹주로 부상하였다. 이 시기는 루룽팅의 정치적, 군사적 위상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 평가받는다.

쑨원이 주도한 호법운동 당시 루룽팅은 호법군 정부의 원수 중 한 명으로 추대되며 혁명 세력과 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쑨원의 혁명 이념에 동조하기보다는 자신의 세력 확장과 기득권 유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이로 인해 쑨원 및 광둥 지역 군벌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으며, 1920년과 1921년에 걸쳐 일어난 양광전쟁에서 천중밍의 군대에 패배하여 광둥에서 축출되고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1920년대 초반, 리종런과 바이충시 등이 이끄는 신광시파가 부상하면서 루룽팅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신광시파와의 대결에서 연패한 그는 결국 1924년 정계와 군부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이후 상하이와 쑤저우 등지에서 은거하다가 1928년 쑤저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혼란스러웠던 민국 초기에 무력을 바탕으로 한 지방 할거 세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