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마커스 콘(Roy Marcus Cohn, 1927~1986)은 미국의 변호사로, 20세기 중반 미국 정계와 사법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논란의 인물이다. 뉴욕에서 유대계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0세의 어린 나이에 컬럼비아 법학대학원을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나, 그의 경력은 권력 지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1951년 소비에트 연방의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에델과 줄리어스 로젠버그 부부의 재판에서 검찰 측 조력자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들에게 사형 판결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반공주의의 전면에 등장했다.
콘의 악명은 1953년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수석 보좌관으로 임명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는 매카시즘이라 불리는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의 실질적인 설계자로서 수많은 공직자와 예술가를 몰아세우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1954년 육군-매카시 청문회에서 그는 미 육군 내의 공산주의 침투를 주장하며 군부와 대립했으나, 이 과정에서 보여준 강압적이고 비윤리적인 심문 방식은 대중의 반감을 샀고 결국 매카시의 몰락과 함께 그 역시 워싱턴 정계의 전면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워싱턴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온 콘은 변호사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의뢰인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조계의 '해결사'로 명성을 떨쳤다. 마피아 두목인 토니 살레르노부터 뉴욕의 부동산 거물들까지 다양한 권력자들을 변호했으며, 특히 젊은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스승이자 멘토로서 법적 기술과 언론 대응 방식을 전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상대방을 위협하는 전술을 서슴지 않았으며, 이는 훗날 미국 정치 문화의 공격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로이 콘의 삶은 극심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매카시 시절 동성애자를 국가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하여 공직에서 퇴출시키는 '라벤더 공포(Lavender Scare)'를 주도했으나, 정작 본인 역시 동성애자였다. 그는 평생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인하며 강력한 보수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위선적인 행보는 그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애국심과 도덕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탈세와 문서 위조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일삼았던 행태와 궤를 같이한다.
그의 몰락은 198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1986년 뉴욕주 변호사 협회는 의뢰인 자금 횡령 및 문서 조작 등의 혐의로 그의 변호사 자격을 박탈했다. 같은 해 그는 에이즈(AIDS)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나,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이 간암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며 질병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로이 콘은 사후에도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미국의 어두운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되었으며, 법과 정의를 사적으로 유용한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