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Julius)는 고대 로마의 귀족 가문인 율리우스 씨족(Gens Julia)에서 유래한 남성 인명으로, 라틴어 표기인 율리우스(Iulius)의 영어식 발음이다. 이 씨족은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아들 율루스(Iulus)를 시조로 여기며, 신화적으로는 사랑과 미의 여신 베누스의 혈통을 잇는다고 주장했다. 이 이름은 서구권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이름으로 정착되었으며, 1년 중 7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July' 또한 이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역사적으로 이 이름을 가진 인물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다. 그는 탁월한 군사적 재능으로 갈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로마의 영토를 알프스 이북까지 확장했고, 당시 미지의 땅이었던 브리타니아 원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카이사르는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뛰어난 문장가이자 연설가였으며, 그가 남긴 《갈리아 전기》는 라틴어 산문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역사 기록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하여 로마의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으나, 크라수스 사후 정치적 균형이 깨지며 내전에 돌입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여 정적들을 제압하고 종신 독재관에 취임했다. 그는 통치 기간 중 태양력을 기반으로 한 율리우스력을 제정하여 시간 체계를 정비하고 각종 사회 개혁을 단행했으나, 공화정 체제를 수호하려는 브루투스 등 원로원 파에 의해 기원전 44년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제정 로마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 중에서도 줄리어스(율리우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인물들이 있다. 특히 16세기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전사 교황'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교황령의 영토를 확장하고 교권을 강화했다. 그는 또한 르네상스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로서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의뢰하고 라파엘로를 로마로 불러들이는 등 바티칸을 당대 최고의 예술 중심지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현대 사회에서 줄리어스는 다양한 언어권에서 변형되어 널리 사용되는 이름이다. 이탈리아어의 줄리오(Giulio), 프랑스어의 쥘(Jules), 스페인어의 훌리오(Julio) 등이 모두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 문학적으로도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이 이름은 고전적인 품격과 지도력, 그리고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