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왕국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에 존재했던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의 점령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선언하며 형성되었으며, 루앙프라방 왕실을 중심으로 비엔티안과 참파사크 등 분열되어 있던 지역들을 통합하여 단일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9년 프랑스 연합 내의 자치국이 된 후, 1953년 프랑스-라오스 조약을 통해 완전한 주권 독립을 달성하고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초기 정치 체제는 국왕 시사방 봉을 국가 원수로 하는 의회 민주주의 형태를 띠었으나, 건국 초기부터 심각한 내부 갈등에 직면했다. 우파 세력과 중립파, 그리고 공산주의 세력인 파테트라오(라오스 애국전선) 사이의 권력 투쟁이 지속되었으며, 이는 국가 발전의 큰 장애물이 되었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을 통해 라오스의 중립성이 국제적으로 선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정쟁은 가라앉지 않았으며 결국 라오스 내전으로 이어졌다.
라오스 왕국은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접한 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을 공격하기 위해 라오스 동부 국경 지대에 '호치민 경로'를 구축하자, 미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라오스 영토에 막대한 양의 폭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라오스 왕국 정부군과 미국은 파테트라오 및 북베트남 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라오스는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폭탄이 투하된 국가라는 비극적인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라오스 왕국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1973년 비엔티안 협정을 통해 연합정부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1975년 사이공 함락과 캄보디아의 공산화로 인도차이나 전역의 정세가 급변했다. 이에 힘을 얻은 파테트라오는 왕국 전역을 장악해 나갔으며, 마침내 1975년 12월 2일 국왕 시사방 밧타나의 퇴위를 강요하고 군주제를 폐지하며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라오스 왕국의 멸망과 함께 마지막 국왕과 왕실 가족들은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이후 그들의 행방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라오스 왕국은 수세기에 걸친 지역적 분열을 종식하고 현대 라오스의 지리적 기틀을 마련했으나, 이데올로기 대립과 외부 강대국의 개입이라는 시대적 파고를 극복하지 못한 채 3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