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수

권응수(權應銖, 1546~1608)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관군과 합세하여 일본군을 격퇴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기(仲期),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1546년 경상도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1584년(선조 17) 별시 무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진출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까지 훈련원 첨정 등의 직책을 수행하며 실무적인 군사 역량을 쌓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권응수는 고향인 예천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항전을 시작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영천성 복성 전투이다. 당시 영천은 일본군의 보급로와 연락망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권응수는 인근 지역의 의병과 관군을 결집하여 지휘권을 장악한 뒤, 치밀한 전략과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영천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임진왜란 초기 육전에서 거둔 드문 승리였으며, 경상도 동부 지역의 전세를 반전시키고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천성 탈환 이후 권응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승진하였다. 그는 정유재란 당시에도 경주와 울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며 방어선을 고수했다. 특히 명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울산성 전투 등에 참여하며 전공을 세웠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군사들을 통솔하여 지역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 전쟁이 종결된 후에는 밀양부사와 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며 전후 복구와 변방 수비에 매진하였다.

1604년(선조 37) 조정에서는 그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책록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하였다. 1608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조정은 의정부 좌찬성을 추증하였으며,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렸다. 현재 경상북도 영천에는 그의 공적을 기리는 숭렬당(崇烈堂)이 건립되어 있으며, 그가 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보물 제668호 '권응수 장군 유물'은 당시의 무기 체계와 군사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권응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용맹함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선 조선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