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년은 한반도의 삼국 시대에서 고구려 평원왕, 백제 위덕왕, 신라 진평왕이 각국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신라는 진평왕 즉위 초기 단계로,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데 주력하였다. 특히 이 해에 신라는 독자적인 연호인 '건복(建福)'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 대내외적으로 자립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는 신라가 진흥왕 이후 확보한 영토를 바탕으로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기틀을 공고히 다져가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수나라가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통일 제국으로서의 기반을 확립해가고 있었다. 수 문제 양견은 새로운 수도인 대흥성(大興城)의 건설을 지속하며 중앙 집권화를 꾀하였다. 이 시기 수나라는 북방의 돌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간책을 사용하는 등 고도의 외교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나라의 국력 신장은 장차 고구려를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는 이탈리아 영토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라벤나 총독부(Exarchate of Ravenna)를 설치하였다. 이는 군사권과 행정권을 결합한 특수 행정 단위로, 랑고바르드족의 침입에 맞서 제국의 서방 영토를 보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마우리키우스의 이러한 개혁은 제국의 생존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중세 비잔티움 행정 체계의 중요한 변화로 평가받는다.
유럽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네우스트리아의 국왕 힐페리히 1세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힐페리히 1세의 죽음은 프랑크 왕국 내의 극심한 권력 투쟁과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어린 아들인 클로타르 2세가 즉위하였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섭정인 모후 프레데군다와 주변 귀족 세력들에게 분산되었다. 이 사건은 메로빙거 왕조 내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지역 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584년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수나라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구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방어 체계 정비와 프랑크 왕국의 내부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 사회의 틀을 벗어나 중세적 중앙 집권화 혹은 분권화된 봉건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