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2년은 10세기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해로, 서기 932년이자 단기로는 3265년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와 후삼국 시대라는 혼란기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유럽과 서남아시아 역시 각기 다른 정치적 변동을 겪고 있었다. 이 해는 중세사의 흐름 속에서 각 지역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거나 공고화되는 과정에 있었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가 대립하던 후삼국 시대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고려의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과 치열한 군사적 대결을 펼쳤다. 특히 932년에는 후백제의 해군 장수 상애가 고려의 대우도(大羽島)를 공격하는 등 해상 교전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후백제 내부에서는 권력 승계를 둘러싼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신라는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져 사실상 경주 주변만을 통치하는 소국으로 전락하여 고려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後唐)이 통치하던 시기였다. 후당의 제2대 황제 명종(이사원)의 치세 하에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황위를 둘러싼 잠재적인 불안 요소는 여전했다. 932년에는 유교 경전인 '구경(九經)'의 목판 인쇄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후 송나라 시대 인쇄술 발달과 학문 보급의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남방의 십국들 역시 각자의 영토에서 독자적인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며 후세의 지역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아바스 왕조에서는 중대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제18대 칼리파인 알 무크타디르가 반란군과의 전투 중에 살해당하면서 그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뒤를 이어 알 카히르가 제19대 칼리파로 즉위하였으나, 아바스 왕조는 이미 실권이 군부나 지역 통치자들에게 분산되어 칼리파의 권위가 쇠퇴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이슬람 제국의 분열을 가속화하고 지역 왕조들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 하인리히 1세가 마자르족의 침공에 대비해 군사력을 정비하고 성곽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이는 훗날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신성 로마 제국이 수립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로마노스 1세 레카페노스가 공동 황제로서 제국을 이끌며 내부 개혁을 추진하고 대외 관계를 조율했다. 서유럽의 여러 봉건 영주들은 각자의 영지에서 세력을 확장하며 중세 봉건제의 전형적인 체제를 공고히 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