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식 철모(九〇式鉄帽)는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일본 제국군이 사용한 주력 전투용 헬멧이다. 황기 2590년인 1930년에 정식 채택되었기에 그 연도의 끝자리를 따서 90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전까지 사용되던 사쿠라 제식 철모나 프랑스의 아드리안 헬멧을 참고해 만든 초기형 모델들의 방어력 부족과 설계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독자적인 형태로 개발되었다.
형태적 특징으로는 정수리 부분이 둥근 돔 모양이며, 하단부의 챙이 좌우와 뒷부분으로 완만하게 퍼져 있어 귀와 목덜미를 보호하도록 설계되었다. 초기 생산분은 크롬 몰리브덴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으나, 전쟁이 격화되고 물자가 부족해짐에 따라 후기형은 망간강이나 일반 탄소강으로 재질이 변경되어 방어력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였다. 철모의 꼭대기에는 내부 열기 배출을 위한 통기 구멍이 뚫려 있으며, 내부에는 가죽 라이너와 충격 완화를 위한 패드가 부착되었다.
방어 성능 면에서는 주로 포탄의 파편이나 권총탄 수준의 투사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서구권의 M1 헬멧이나 슈탈헬름에 비해 철판의 두께가 얇아 소총탄의 직접적인 피격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턱끈은 버클 방식이 아닌 긴 면사 끈을 복잡하게 매듭지어 고정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착용 시 안정감은 있었으나 급박한 상황에서 탈착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었다.
90식 철모는 소속 군종에 따라 전면 휘장이 달랐다. 육군용은 일본 육군을 상징하는 오각별 휘장을 부착했으며, 해군 및 해군 육전대용은 닻 문양의 휘장을 부착하거나 페인트로 그려 넣었다. 전장 환경에 따라 황갈색이나 국방색 등으로 도색되었으며, 빛 반사를 방지하고 위장물을 꽂기 위해 철모 위에 그물망을 씌워 사용하기도 했다. 1938년에는 이를 개량한 98식 철모가 등장했으나 생산량의 한계로 인해 90식 철모가 종전 시까지 가장 널리 쓰였다.
전후 90식 철모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폐기되거나 노획되어 다양한 경로로 유입되었다. 전후 초기 일본 경찰예비대에서 한동안 사용되기도 했으며, 중국 내전 당시 국공 양측 군대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초기에도 일부 군사 집단에 의해 재활용되는 등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비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군사 유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