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년은 9세기 중반의 해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대한 정치적, 종교적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이다. 당나라에서는 대규모 불교 탄압이 절정에 달했으며, 서구권에서는 바이킹의 침공이 가속화되었다. 한반도의 신라 또한 중앙 정부의 혼란과 지방 세력의 성장이 교차하며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무종(武宗)의 주도로 불교를 탄압한 ‘회창의 폐불(會昌之毁佛)’이 정점에 이르렀다. 무종은 도교를 숭상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 4,600여 곳과 암자 40,000여 곳을 철거하도록 명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불상과 종이 녹여져 화폐로 주조되었으며, 26만 명이 넘는 승려와 니승들이 강제로 환속당했다. 이는 중국 불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타격 중 하나로 기록되며, 선종을 제외한 많은 종파가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의 통일신라는 문성왕 7년에 해당하였다. 당시 신라는 중앙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특히 845년 무렵은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영향력이 강력했으나, 동시에 그를 경계하는 중앙 귀족들과의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장보고는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차비(次妃)로 들이려 시도했으나, 신분 질서를 고수하는 귀족들의 거센 반대로 결국 좌절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신라 사회의 균열을 심화시켰다.
유럽에서는 바이킹의 활동이 두드러진 해였다. 전설적인 바이킹 지도자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이끄는 함대가 센강을 거슬러 올라가 프랑크 왕국의 파리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서프랑크의 국왕 샤를 2세는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액수의 금과 은을 공물로 바쳐야 했다. 이 사건은 유럽 전역에 바이킹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켰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분열과 약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845년은 동아시아와 유럽 대륙 모두에서 기존의 종교적, 정치적 질서가 도전받거나 재편되는 해였다. 중국에서는 국가 권력에 의한 종교 통제가 강화되었고, 신라에서는 골품제 사회의 모순이 장보고라는 인물을 통해 표출되었다. 또한 서구에서는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인해 중세 사회의 방어 체계와 정치적 지형이 변화하는 등,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들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