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년은 통일신라 애장왕 3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국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시기이다. 이 해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왕실의 후원을 받아 가야산에 해인사를 창건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애장왕의 왕후가 난치병에 걸렸을 때 두 스님의 기도로 병이 나았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해인사는 훗날 고려 대장경판을 봉안하는 법보종찰로서 한국 문화유산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정치적 대변동이 일어났다. 서기 797년부터 제국을 통치해 온 여제 이레네가 폐위되고, 재무장관이었던 니케포로스 1세가 황제로 즉위하며 니케포로스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이레네는 성상 숭배를 부활시키는 등 종교적 업적을 남겼으나, 과도한 세금 감면과 실정으로 인해 국방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니케포로스 1세의 즉위는 제국의 재정 재건과 군사력 강화를 목표로 한 통치 구조의 전환점이 되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크메르 제국의 기틀이 마련된 결정적인 해였다. 자야바르만 2세는 쿨렌산에서 자신을 전륜성왕이자 신왕(데바라자)으로 선포하며 자바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이 사건은 앙코르 왕조의 공식적인 출범으로 간주되며, 이후 수 세기 동안 동남아시아 대륙을 호령한 강력한 크메르 문명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롤루스 대제가 제국 내부의 행정과 법질서를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802년에는 '순찰사(Missi Dominici)' 제도를 강화하는 칙령을 발표하여, 황제의 대리인들이 지방 관료의 부정을 감시하고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도록 했다. 또한 이 시기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가 보낸 외교 사절단과 선물인 코끼리 '아불 아바스'가 아헨에 도착하며 동서양 간의 대규모 외교적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 초기 정벌 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가 무츠 지방에 이사와 성을 축조하여 북방의 에미시 세력을 압박하고 조정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이는 일본 고대 국가의 영역 확장과 중앙 집권 체제 강화 측면에서 중요한 군사적 성취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