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

712년은 8세기의 초반에 해당하는 연도로, 동아시아와 중동,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권력이 교체되고 새로운 문화적, 영토적 팽창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이다. 특히 중국 당나라에서는 역사적인 황제의 교체가 있었으며, 이슬람 제국은 동서양 양방향으로 영토를 급격하게 넓히며 세계사의 지형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당나라의 정치적 격변이 두드러졌다. 712년, 당나라의 제5대 황제 예종이 양위하고 그의 아들 이융기(李隆基)가 제6대 황제인 현종(玄宗)으로 즉위했다. 현종의 즉위는 측천무후 이후 불안정했던 당나라 황실의 내부 권력 투쟁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했으며, 이후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로 꼽히는 '개원의 치(開元之治)'가 열리는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겐메이 덴노(원명천황)의 명을 받아 오노노 야스마로(太安万侶)가 편찬한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가 완성되어 헌상되었다. 이는 일본 황실의 권위를 확립하고 신화와 역사를 체계화한 중요한 기록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는 남북국 시대의 체제가 안정화되어 가고 있었다. 남쪽의 통일신라는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관료전 지급과 정전 지급 등 율령 체제를 정비하고 농업 생산력을 높여 국가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고왕)이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712년 무렵 발해는 당나라, 돌궐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적 교섭을 통해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었으며, 이는 이듬해인 713년 당나라로부터 정식으로 책봉을 받아 발해군왕으로 인정받는 결과로 이어지는 외교적 포석의 시기였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우마이야 왕조(이슬람 제국)는 712년을 기점으로 유례없는 영토 확장을 이룩했다. 전년도에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데 이어, 712년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북아프리카 총독 무사 이븐 누사이르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반도로 진격했다. 이로 인해 서고트 왕국의 대부분이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동시에 동쪽에서는 장군 무함마드 이븐 카심이 인도 아대륙의 신드(현재의 파키스탄 일대) 지역을 정복하여 이슬람교가 인도 지역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의 지휘 아래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와 화라즘 지역까지 세력을 뻗쳤다.

유럽 서부와 남부 지역은 이슬람 제국의 팽창과 게르만족 국가들의 세력 재편으로 인해 큰 혼란과 변화를 겪었다. 앞서 언급된 이베리아반도의 서고트 왕국은 우마이야 왕조의 공격으로 사실상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는 훗날 유럽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수백 년간 충돌하는 레콩키스타(국토 회복 운동)의 역사적 발단이 되었다. 이탈리아반도에서는 리우트프란트(Liutprand)가 랑고바르드(롬바르드)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로마법을 바탕으로 법률을 정비하여 랑고바르드 왕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어낸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