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 정변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육군 소장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8기생 주동자들과 일부 장교들이 군대를 동원하여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군부 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장기 집권과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의 시작점이 되었다. 정변 세력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며 민생고를 해결하겠다는 이른바 '혁명 공약'을 내세워 권력 찬탈의 명분을 찾았다.
정변의 배경에는 4·19 혁명 이후 수립된 장면 내각의 정치적 무력함과 사회적 혼란이 있었다. 당시 민주당 정권은 내부 파벌 싸움으로 인해 국정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었으며, 혁명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와 통일 운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군 내부에서는 인사 적체에 불만을 품은 소장파 장교들이 군 개혁을 요구하며 상층부와 갈등을 빚고 있었고, 이러한 군 내부의 동요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정변 모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1961년 5월 16일 오전 3시, 해병대와 공수특전단, 제6관구사령부 소속 부대 등 약 3,500명의 정변군은 한강인도교를 건너 서울 시내로 진입하여 중앙청, 방송국 등 주요 공공기관을 점령하였다. 이들은 당일 오전 5시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군사 혁명 위원회의 성명을 발표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당시 장면 총리는 수녀원에 은신하였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유혈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정변군에 대한 진압 명령을 내리지 않아 군부의 정권 장악은 사실상 묵인되었다.
정변 직후 구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기존의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사회단체의 활동을 일절 금지하며 헌정을 중단시켰다. 군정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는 등 국가 통치 기구를 재편하며 권력을 공고히 하였다. 약 2년 7개월간 이어진 군정 기간을 통해 박정희는 정치적 기반을 다졌으며, 1963년 민정 이양 과정에서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각에 따라 극명하게 나뉜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에서는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경제 성장을 이끌어낸 '민족 중흥의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판적인 측에서는 헌법적 절차를 무력으로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고사시킨 '군사 반란'이자 독재의 서막으로 규정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 과정과 사법적 판단은 이를 헌법 질서를 파괴한 군사 정변으로 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