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년은 5세기 말엽에 해당하는 시기로, 동양에서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와 한반도의 삼국 시대가 전개되었으며 서양에서는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게르만족의 국가 건설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다. 이 해는 동서양 모두에서 정치적, 종교적 변화가 일어난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에서는 신라의 소지 마립간 18년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이 해 가을에 우솔성(牛率城)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국방을 강화했다. 또한 고구려의 세력권에 있던 말갈이 신라의 북쪽 변방인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해 왔으나, 신라 군대가 이를 격퇴하며 영토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신라는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맞서며 세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북위(北魏)의 효문제가 추진한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이 정점에 달했다. 496년 정월, 효문제는 선비족의 성씨를 한족 스타일의 성씨로 바꾸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황실의 성씨였던 탁발씨(拓跋氏)가 원씨(元氏)로 개칭되는 등 대대적인 성씨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는 유목 민족이었던 선비족이 중원의 문화에 완전히 융합되도록 하려는 의도였으나, 보수적인 선비족 귀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같은 시기 남조에서는 남제(南齊)가 통치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를 세운 클로비스 1세가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클로비스 1세는 톨비아크 전투에서 알라마니족을 격파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이 전투 직후 그는 아내 클로틸다의 권유를 받아들여 가톨릭(니케아 신조)으로 개종할 것을 서약했다. 당시 다른 게르만 왕국들이 가톨릭에서 이단으로 간주하던 아리우스파를 신봉했던 것과 달리, 클로비스의 가톨릭 개종은 로마 교회 및 로마계 주민들과의 결속을 강화하여 프랑크 왕국이 장차 서유럽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다.
종교계에서는 로마 교황 젤라시오 1세가 서거하고 아나스타시오 2세가 제50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젤라시오 1세는 교권과 속권의 분리와 교권의 우위를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뒤를 이은 아나스타시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교회와 갈등을 빚던 아카키우스 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건한 화해 정책을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초기 중세 기독교 세계의 질서와 교황권의 확립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