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년

380년은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종교적 전환점이 된 해였다. 2월 27일, 로마의 공동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1세와 그라티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테살로니카 칙령'(Cunctos populos)을 반포하였다. 이 칙령은 니케아 신조를 따르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규정하였으며, 아리우스파를 비롯한 이단 세력을 배척하고 보편적 교회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이로써 기독교는 박해받던 종교에서 제국의 공식적인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 동부를 통치하며 고트 전쟁(376~382)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 고트족의 유입과 반란은 제국의 큰 위협이었으나, 테오도시우스는 군사적 대응과 외교적 협상을 병행하며 제국의 안정을 꾀하였다. 특히 그는 380년 테살로니카에서 중병을 앓다가 회복한 후 기독교 세례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종교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여 제국 내 다신교 전통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화북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 체제를 유지하던 시기였다. 380년경 전진은 한반도와 서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국 대륙 전체의 통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부견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국가의 통합을 꾀했으며, 이러한 문화적 흐름은 주변국인 고구려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진의 이러한 전성기는 몇 년 후 벌어질 비수대전의 패배 이전까지의 일시적인 안정기이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중앙 집권화를 추진하며 세력을 다투고 있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의 치세 아래 불교 수용(372년)과 태학 설립, 율령 반포 등을 거치며 국가 시스템을 정비한 상태였으며, 이는 이후 광개토대왕 시기의 팽창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되었다. 백제는 근구수왕 재위기였으며, 고구려와의 군사적 대립 속에서도 해상 무역을 통해 왜 및 중국 동남부 세력과 활발히 교류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신라에서는 내물 마립간이 통치하며 김씨에 의한 왕위 세습권을 확립하고 국가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당시 신라는 왜의 잦은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구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선진 문물과 군사적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380년의 한반도는 삼국이 내부 정비와 외부 확장을 동시에 꾀하며 고대 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성해 가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