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년

345년은 율리우스력의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며, 4세기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이 시기 전 세계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동아시아와 지중해 세계 모두 크고 작은 정치적 변동과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각국의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던 시점이고, 중국은 5호 16국 시대와 동진의 분열기, 서양은 로마 제국의 분할 통치기였다.

한반도의 삼국은 각자의 체제를 정비하며 세력 확장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342년 전연(前燕) 모용황의 대규모 침공으로 인해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고 미천왕의 시신을 빼앗기는 등의 큰 타격을 입은 직후였다. 따라서 345년 전후의 고구려는 무너진 국가 기틀을 수습하고 전연과의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국력을 회복하는 데 매진해야만 했다. 백제는 제12대 국왕인 계왕이 재위하던 시기(344년~346년)로, 내부적으로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귀족 세력 간의 정치적 알력이 존재했던 시점이다. 신라는 흘해 이사금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백제 및 왜와 교류하거나 방어 체계를 굳히는 등 점진적인 국가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 대륙은 화북 지방의 5호 16국 시대와 강남의 동진(東晉)으로 양분되어 치열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었다. 화북에서는 후조(後趙)의 석호가 잔혹한 통치를 이어가며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점차 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고, 화북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전연의 모용황은 고구려를 굴복시킨 뒤 배후의 위협을 없애고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남쪽으로 밀려난 한족 중심의 동진은 목제(穆帝) 재위기였으며, 북벌을 시도하면서도 내부적인 권력 투쟁과 안정을 동시에 도모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서양의 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1세 사후 그의 아들들에 의해 제국이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345년 당시 로마 제국은 동방을 다스리는 콘스탄티우스 2세와 서방을 다스리는 콘스탄스 1세의 양두 체제로 운영되었다. 이 시기 로마는 외부적으로 페르시아 사산 왕조 등 이민족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기독교 공인 이후 불거진 아리우스파와 니케아파 간의 신학적, 정치적 갈등이 제국 전체의 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두 황제 역시 종교적 입장이 달라 제국 동서방의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345년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절대적인 강자가 지배하는 평화의 시기라기보다는, 다수의 세력이 생존과 패권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지정학적 긴장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고구려의 국가적 위기 극복과 전연의 팽창이 맞물렸고, 로마 제국에서는 형제 황제들 간의 미묘한 대립과 종교적 갈등이 교차하며 향후 도래할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을 준비하는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