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년

336년은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의 교리적 갈등과 로마 교황권의 변화가 두드러진 해였다. 로마 제국에서는 1월 18일 교황 마르코가 즉위하였으나, 그는 재임 8개월 만인 10월 7일에 선종하였다. 마르코 교황의 짧은 임기 동안 로마에는 산 마르코 성당의 전신이 되는 초기 건축물이 세워지는 등 신앙의 외연적 확장이 시도되었다. 그의 사후 교황좌는 약 4개월간 공석으로 유지되다가 이듬해 유실리오 1세가 선출되며 이어지게 된다.

기독교 역사에서 336년은 아리우스파의 창시자인 아리우스가 사망한 해로도 기록된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아리우스콘스탄티누스 1세의 지지를 얻어 복권될 예정이었으나, 콘스탄티누폴리스에서 복권 예식 직전에 급사하였다. 그의 죽음은 당시 정통 교리를 고수하던 세력에게 신의 심판으로 해석되었으며, 이는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 간의 신학적 대립이 더욱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오호십육국 시대가 지속되며 북방 민족과 한족 왕조 간의 대립이 이어졌다. 후조(後趙)의 석호(石虎)가 화북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행사하며 통치를 이어갔고, 남쪽의 동진(東晉)은 성제(成帝)의 치세 아래 강남 지역을 방어하며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다. 이 시기 중국 대륙은 잦은 전쟁과 왕조의 교체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으나, 동시에 불교가 민간과 지배층 사이로 깊숙이 전파되는 사상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고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던 시기였다. 고구려에서는 고국원왕이 즉위 초기의 불안정한 정세를 수습하며 북방의 전연(前燕) 세력과 대치하고 있었다. 백제는 비류왕이 재위하며 진씨 가문 등 유력 귀족들과의 협력을 통해 왕권을 유지했고, 신라에서는 흘해 이사금이 즉위하여 외교적 안정을 꾀하던 때였다. 삼국은 각기 영토 확장보다는 내부 조직 정비와 인접 국가와의 세력 균형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336년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의 종교적 진통과, 동아시아의 정치적 격변기가 맞물린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치세 말기에 접어들며 제국의 통합과 분열의 전조가 동시에 나타났으며, 동양에서는 삼국시대와 오호십육국이라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각국이 생존과 발전을 도모하는 역동적인 흐름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