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년은 서력기원으로 토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이 시기 세계의 주요 문명권은 격변과 통합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유럽과 지중해 세계는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단독 황제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던 시기였으며, 동아시아는 한반도의 삼국시대와 중국의 동진 및 5호 16국 시대가 전개되며 여러 세력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1세의 황실 내부에 참혹한 숙청이 발생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황제의 첫째 아들이자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입증했던 부제 크리스푸스가 아버지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계비이자 크리스푸스의 계모인 파우스타 황후 역시 처형되었다. 두 사람의 정확한 처형 사유는 당시 기록의 말살로 인해 현대 역사학계에서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으나, 황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암투나 불륜 조작 등 복합적인 정치적 스캔들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적 비극과 대비되게 기독교 역사에서는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황태후 헬레나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헬레나는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던 골고다 언덕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른바 '참십자가(True Cross)'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이 순례를 계기로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와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등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성당들의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핵심 종교로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토대를 다지게 되었다.
한반도는 고구려 미천왕, 백제 비류왕, 신라 흘해 이사금이 통치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미천왕은 앞서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여 한사군 세력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이후, 요동 지역으로의 진출을 지속적으로 도모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요서와 요동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선비족 모용부와의 군사적 긴장감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반면 백제와 신라는 비교적 대외적인 큰 충돌 없이 내부적인 체제 정비와 왕권 강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은 남북으로 나뉘어 혼란이 지속되었다. 강남 지역으로 밀려나 세워진 동진(東晉)에서는 전년도에 명제가 죽고 어린 성제(成帝)가 즉위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황태후 유씨와 그 오빠인 외척 유량(庾亮)이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을 장악했는데, 이들의 강압적인 중앙 집권화 정책과 군벌 견제는 훗날 소준의 난이라는 대규모 내전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불씨를 낳았다. 한편, 화북 지역에서는 흉노족이 세운 전조(前趙)와 갈족 출신의 석륵이 이끄는 후조(後趙)가 북중국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