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년은 율리우스력으로 화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이며, 육십갑자로는 경오년(庚午年)에 해당한다. 4세기의 첫 10년을 마무리하는 해로, 동아시아와 유럽 역사 전반에 걸쳐 기존의 정치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이 부상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띤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신라의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으며, 중국 대륙에서는 5호 16국 시대의 전란이 격화되는 등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
한반도 역사에서 310년은 신라의 제15대 국왕인 기림 이사금이 사망하고, 제16대 흘해 이사금이 즉위한 해이다. 흘해 이사금은 내해 이사금의 손자이자 석우로의 아들로, 석씨 왕조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덕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고구려는 미천왕, 백제는 비류왕의 재위 기간에 속해 있었으며, 한반도 정세는 313년 고구려의 낙랑군 축출을 앞두고 힘의 균형이 서서히 재편되는 시기였다.
중국 역사에서는 5호 16국 시대의 초기 국가인 전조(한나라)의 건국자 유연이 사망하며 큰 정변이 일어났다. 흉노족 출신으로 서진의 혼란을 틈타 황제를 칭했던 유연이 310년에 병사하자, 태자 유화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유화는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인 유총에게 살해당했고, 유총이 제3대 황제로 등극하였다. 유총의 즉위는 이후 서진 제국의 수도 낙양을 함락시키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 '영가의 난'을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화북 지역의 전란이 더욱 심화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유럽의 로마 제국에서는 사두정치(Tetrarchy) 체제의 붕괴와 관련된 권력 투쟁이 지속되었다. 310년, 전직 황제였던 막시미아누스가 사위이자 경쟁자인 콘스탄티누스 1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꾀하다 실패하고 마르세유에서 사망하였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서방 정제로서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 단독 황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 중 하나이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멜키아데스가 제32대 교황으로 선출된 해이기도 하며, 이는 기독교가 공인(313년 밀라노 칙령)되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처럼 310년은 각 문명권에서 구세대의 인물들이 퇴장하고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여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분기점이었다. 중국 서진의 쇠퇴와 북방 유목민족의 남하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이는 주변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외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진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고구려가 요동 및 한반도 북부의 중국 군현 세력을 몰아낼 준비를 갖추게 된 배경에도 310년을 전후한 중국 대륙의 정세 변화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