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개정 추진에 반발하여 2019년 3월부터 시작되어 6월부터 본격화된 대규모 반정부 및 민주화 시위이다. 초기에는 송환법 철회를 단일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홍콩의 완전한 민주주의 보장과 중국 본토의 부당한 간섭 반대를 요구하는 광범위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는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중 운동으로, 홍콩에 적용되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위기와 한계를 전 세계에 드러낸 중대한 사건이다.
이 운동의 직접적인 발단은 2018년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인 커플 살인 사건이었다. 피의자가 홍콩으로 도주했으나 홍콩과 대만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홍콩 법원이 그를 살인 혐의로 처벌할 수 없었다. 이를 명분으로 2019년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 주도하에 중국 본토,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개정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홍콩 내 반중 인사나 인권 운동가들이 중국 본토로 송환되어 처벌받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했으며, 이는 홍콩의 사법적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2019년 6월 9일 100만 명, 6월 16일에는 홍콩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약 2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거리에 나오며 시위는 유례없는 규모로 확산되었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홍콩 정부는 결국 법안 추진의 보류와 공식 철회를 발표했으나, 시민들의 분노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항의와 근본적인 정치 체제 개혁 요구로 이미 옮겨간 상태였다. 시위대는 '5대 요구사항(五大訴求, 缺一不可)'을 내걸고 투쟁을 이어갔다. 5대 요구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시위 폭동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위원회 설치, 행정장관 및 입법회 의원 직선제 실시였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홍콩 시내 곳곳, 특히 홍콩 중문대학교와 이공대학교 등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의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홍콩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는 물론 실탄까지 사용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고, 시위대 역시 화염병과 활 등으로 맞서며 부상자와 체포자가 속출했다. 이러한 극심한 혼란과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홍콩 시민들은 2019년 11월에 열린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에 전체 의석의 85% 이상을 몰아주는 압승을 거두게 하며, 민주화와 5대 요구사항 수용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 여론을 표출했다.
그러나 2020년 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됨에 따라 방역을 이유로 집회가 엄격히 통제되면서 시위는 점차 동력을 잃었다. 결정적으로 2020년 6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 내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의 행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직접 제정 및 시행하면서 시위는 사실상 강제 진압되었다.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다수의 주요 민주화 운동가와 정치인들이 구속되거나 해외로 망명했고, 빈과일보 등 주요 반중 성향의 언론사들이 강제 폐간되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홍콩이 누리던 언론과 집회의 자유 및 자치권은 실질적으로 붕괴되었으나, 2019년 민주화 운동은 권위주의 체제에 맞선 홍콩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 의지를 보여준 역사적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