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지방선거는 대한민국에서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도가 30년 만에 부활하며 실시된 역사적인 선거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지방자치 실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여야 합의를 거쳐 지방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가 확정되었다. 이는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에서 벗어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선거는 두 단계로 나누어 시행되었다. 1991년 3월 26일에는 시·군·구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기초의회 선거가 먼저 치러졌으며, 이어 6월 20일에는 특별시·직할시·도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광역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이 금지되었으나,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이 허용되어 여야 정당 간의 치열한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다만, 이 당시에는 지방자치단체장(시장, 도지사 등) 선거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의회 의원만을 선출하는 데 그쳤다.
정치적 배경으로는 1990년 초 단행된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 이후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상태였다. 이에 맞서 김대중이 이끄는 신민주연합당과 이기택의 민주당이 야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6월 광역의원 선거는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전국 규모의 선거였기에, 민자당에 대한 민심의 향방과 야권의 결집력을 확인하는 시험대와 같은 성격을 띠었다.
선거 결과는 집권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20일 실시된 광역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은 전체 의석의 약 65%를 차지하며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반면 야당인 신민주연합당은 호남 지역에서만 절대 우위를 점했을 뿐,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영남 등 다른 지역에서는 민주자유당에 크게 밀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 구도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1년 지방선거는 비록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으나, 지방의회를 구성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고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는 의의가 있다. 이 선거를 통해 배출된 지방의원들은 지역 현안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 행정의 기틀을 닦았다.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단체장 선거까지 함께 실시되면서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