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자산 가치의 비정상적인 팽창과 그에 따른 경제적 과열 상태를 의미한다. 이 현상의 기점은 대개 1985년 9월에 체결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로 본다. 당시 미국은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합의를 주도했다. 이에 따라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일본 정부는 수출 경쟁력 약화를 방어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실물 경제가 아닌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급격히 유입되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토지 불패' 신화가 형성되어 지가가 폭등했다. 도쿄 중심가의 땅값만으로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기업들은 보유한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다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재테크'에 열을 올렸으며, 은행 또한 담보 가치 상승에 힘입어 과도한 대출 경쟁을 벌였다. 1989년 12월 말, 닛케이 225 지수는 장중 38,957포인트라는 역사적 최고점을 기록하며 거품의 정점에 도달했다.
사회적으로는 전례 없는 호황 속에 과잉 소비와 낙관주의가 만연했다. 기업들은 인력 확보를 위해 취업 준비생들에게 고액의 면접비를 지급하거나 호화로운 해외 연수를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 자본은 미국 뉴욕의 록펠러 센터나 영화사 콜롬비아 픽처스 등 세계적인 상징물을 잇달아 인수하며 전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대중 사이에서는 명품 소비와 해외여행이 일상화되었고, 일본의 경제력이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과열된 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일본은행은 1989년 하반기부터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1990년 초 정부가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를 도입하면서 자산 시장의 거품은 순식간에 꺼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부동산 거래는 중단되었으며, 자산 가치가 대출금 이하로 떨어지는 이른바 '깡통 자산'이 속출했다. 이는 금융 기관의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거품의 붕괴는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가계와 기업은 부채 상환에만 집중하며 소비와 투자를 극도로 줄였고, 이는 수요 부족과 물가 하락이 반복되는 디플레이션의 늪을 만들었다. 1980년대의 화려한 호황 뒤에 찾아온 이 경제적 충격은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으며, 오늘날까지도 일본 경제 성장 동력을 제약하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