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1970

1967년부터 1970년까지의 시기는 냉전 체제의 격돌과 전 지구적인 사회 변혁의 물결이 정점에 달한 기간이다. 국제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며 이에 반대하는 반전 운동과 청년 세대의 저항 문화가 확산되었다. 특히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5월 혁명은 기성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전 세계적인 학생 운동과 사회 개혁 요구로 번졌다. 한편, 동구권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이 소련의 무력 개입으로 좌절되면서 사회주의 체제 내부의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시기 국가 안보와 경제 개발이 최우선 과제로 추진되었다. 1968년에는 북한 공작원들의 청와대 습격 시도인 1·21 사태,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며 남북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국가 안보 체제를 강화하였다. 정치적으로는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재선된 이후, 1969년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삼선개헌안이 변칙 통과되면서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가 더욱 공고화되었다.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이 본격화되면서 수출 주도형 성장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1968년 착공하여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하며 물류 혁명을 이끌었고,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0년에는 농촌 근대화의 기치 아래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어 전국적인 지역사회 개발 운동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과학 기술과 인류 문명사적으로는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며 우주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이는 냉전 시대 미소 간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승기를 잡았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의 활동 영역이 지구 밖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대중문화에서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로 대변되는 히피 문화와 록 음악이 청년 세대를 결집시켰으며, 대한민국에서도 통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 문화가 대중문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였다.

이 기간의 끝자락인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은 국제 정세의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미국의 새로운 대외 정책은 냉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탕트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관계의 변화를 예고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자주국방과 독자적인 경제 자립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이로써 1960년대 말은 전후 질서의 재편과 현대 사회의 틀이 잡히는 격동의 시기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