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형 구축함(Zerstörer 1944)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해군(Kriegsmarine)이 설계를 추진했으나 실전 배치에 이르지 못한 차세대 구축함 함급이다. 이 함급은 기존의 1936년형 구축함 시리즈를 계승하며, 전쟁 후반기의 변화하는 해전 환경과 기술적 요구를 반영하여 기획되었다. 특히 연합군의 강력한 항공 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대공 방어 능력의 획기적인 강화와 작전 반경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추진 체계의 혁신이다. 이전까지의 독일 구축함들이 고압 증기 터빈을 사용하여 연비와 신뢰성 문제로 작전 수행에 제약을 받았던 것과 달리, 1944년형은 디젤 엔진 전용 추진 방식을 채택하고자 했다. MAN사의 복동식 2행정 디젤 엔진을 탑재함으로써 항속 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릴 계획이었으며, 이는 대서양에서의 장거리 초계 및 작전 수행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무장 구성에 있어서는 주포의 규격을 변경하여 범용성을 높였다. 기존 함급에서 사용하던 15cm 혹은 12.7cm 함포 대신, 대공 및 대함 사격이 모두 가능한 12.8cm Flak 40 2연장 포탑 3기를 장착할 예정이었다. 이는 분당 발사 속도를 높여 적 항공기에 대한 대응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또한 근접 방어를 위해 5.5cm 및 3cm 대공포를 다수 배치하여 항공 공격에 대한 생존성을 보강하도록 설계되었다.
선체 설계는 배수량 약 3,700톤, 전장 약 126미터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대형 구축함에 속했다. 디젤 엔진 탑재로 인해 선체가 길어지고 내부 구조가 복잡해졌으나, 이는 안정적인 항해 성능과 충분한 탄약 및 연료 적재량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화와 고사양 설계는 전쟁 말기 독일의 열악한 공업 생산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과도한 목표이기도 했다.
1944년형 구축함은 총 5척(Z-52~Z-56)이 발주되었으나, 실제 건조가 완료된 함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전쟁 말기 독일의 자원 부족과 연합군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인해 조선소의 가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해군 전략의 중심이 잠수함(U-보트) 건조로 완전히 이동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결국 1945년 종전과 함께 모든 건조 계획은 폐기되었으며, 이 함급은 독일 구축함 발전사의 마지막 설계안 중 하나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