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은 인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지되던 불안정한 평화 체제인 베르사유 체제가 완전히 붕괴하였으며, 전 세계는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의 팽창주의 정책이 극에 달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제국의 침략 전쟁이 지속되면서 국제 정세는 극도로 경색되었다.
8월 23일,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이 조약에는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다는 비밀 의정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이 공식적으로 발발했다. 이에 대응하여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유럽 대륙은 다시금 포화에 휩싸였다.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양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항복했다.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도 중요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몽골과 만주 국경 지대에서 일본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 사이의 대규모 무력 충돌인 노몬한 사건(할힌골 전투)이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게오르기 주코프가 이끄는 소련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에 따라 일본은 북진 정책을 포기하고 남방 진출로 전략을 수정하게 되었다. 이는 훗날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자 소련이 동부 전선의 안정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역사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 1939년 초,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핵분열 현상을 발견하여 발표했다. 이는 원자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열었으나, 동시에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 개발의 시발점이 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발견이 나치 독일에 의해 무기화될 것을 우려하여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서한을 보냈고, 이는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문화적으로 1939년은 할리우드 영화사의 황금기로 평가받는다. 영화 역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오즈의 마법사'가 이 해에 개봉하여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또한 뉴욕 세계 박람회가 '내일의 세계'라는 주제로 개최되어 텔레비전과 같은 미래 지향적인 기술들이 대중에게 처음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문화적 성취 뒤편에서 인류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