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20세기의 향방을 결정지은 전환점으로 기록되는 해이다. 이 해의 가장 압도적인 사건은 10월 미국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로 촉발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10월 24일 '검은 목요일'과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을 거치며 주가는 유례없는 속도로 폭락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이 경제적 충격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제기했으며, 이후 1930년대 국제 정세가 극단주의와 군국주의로 흐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국제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는 현대 유럽과 중동의 지형을 형성한 중요한 합의들이 이루어졌다. 2월 11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 라테란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바티칸 시국이 독립된 주권 국가로 승인받았다. 미국에서는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취임하여 번영을 약속했으나, 취임 첫해에 발생한 경제 위기로 인해 난항을 겪게 되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배상금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영안(Young Plan)'이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에 따른 경제난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안정을 무너뜨리고 나치당의 부상을 가속화했다.
과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역사적인 사건들이 잇따랐다.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은하들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속도가 거리에 비례한다는 '허블의 법칙'을 발표하여 팽창하는 우주론의 실증적 근거를 제시했다. 문화계에서는 5월 16일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어 영화가 대중 예술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알렉산더 플레밍이 전년도에 발견한 페니실린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현대 항생제 의학의 서막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하의 한국에서는 민족 독립 운동사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의 충돌로 시작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한국인의 강력한 독립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신간회 등 국내외 독립 운동 단체들이 이 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면서 일제의 식민 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종합적으로 1929년은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리던 전후 번영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전 세계가 거대한 경제적·정치적 격동기로 진입한 해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이 드러나고 수정 자본주의와 전체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으며, 과학적 발견과 민족주의적 저항이 공존하며 현대 사회의 복잡한 기반을 닦았던 시기로 정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