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선거로, 미국의 대내외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전쟁의 후유증과 인플레이션, 노동 쟁의, 인종 갈등 등으로 인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또한 스페인 독감의 여파와 러시아 혁명 이후 확산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인 '적색 공포'가 겹치면서, 국민들은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안정과 질서 회복을 강력히 갈망하게 되었다.
공화당에서는 오하이오주 출신의 연방 상원 의원 워런 G. 하딩을 대통령 후보로, 캘빈 쿨리지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하딩은 '정상 상태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라는 간결하고 강력한 표어를 내걸고, 전쟁 이전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민주당은 오하이오주 지사 제임스 M. 콕스를 후보로 지명하고 프랭클린 D. 루즈벨트를 부통령 후보로 세워 우드로 윌슨 행정부의 정책 계승과 국제 연맹 가입의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전쟁에 지친 여론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선거는 미국 역사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이후 치러진 첫 번째 전국 단위 선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20년 8월, 여성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 헌법 제19조가 비준됨에 따라 수천만 명의 여성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유권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하딩의 온건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는 새로운 유권자층인 여성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소구되었으며, 이는 공화당의 압승에 기여하는 요소가 되었다.
선거 결과, 공화당의 워런 G. 하딩은 선거인단 404명을 확보하며 127명에 그친 제임스 M. 콕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일반 투표에서도 하딩은 약 60%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1820년 제임스 먼로 이후 가장 큰 득표율 차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로써 8년간의 민주당 집권이 끝나고 공화당이 정권을 탈환했으며, 미국은 국제주의와 진보주의 시대에서 벗어나 고립주의와 보수적 자유방임주의 경제 정책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또한 1920년 선거는 대중 매체가 선거 운동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피츠버그의 KDKA 라디오 방송국은 선거 당일 밤 투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는데, 이는 라디오가 정치적 정보 전달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딩의 당선은 이후 1920년대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상징하는 '포효하는 20년대'의 서막을 알렸으나, 한편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책임 회피와 고립을 가속화했다는 비판적 평가도 동시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