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캘빈 쿨리지(John Calvin Coolidge Jr.)는 미국의 제30대 대통령으로,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재임했다. 그는 공화당 소속의 보수주의 정치인이었으며,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신중한 성격으로 인해 '침묵하는 캘(Silent Cal)'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당시 신기술이었던 라디오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쿨리지는 1872년 버몬트주에서 태어나 애머스트 대학을 졸업한 후 매사추세츠주에서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경력을 쌓았다. 1919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재임 당시 발생한 보스턴 경찰 파업을 단호하게 진압하며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라는 명언을 남겨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1920년 대선에서 워런 G. 하딩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당선되었으며, 1923년 하딩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의 경제 정책은 철저한 자유방임주의와 긴축 재정으로 요약된다. 쿨리지는 앤드루 멜런 재무장관과 협력하여 소득세를 대폭 감면하고 국가 채무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정책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 불리는 미국의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뒷받침했다. 그는 "미국 국민의 본업은 사업이다"라는 말을 통해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대외 정책에서는 고립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국제 평화를 위한 다자간 협력에 참여했다. 1928년 국가 간의 분쟁 해결 수단으로 전쟁을 포기하기로 약속한 켈로그-브리앙 협정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또한 내치 측면에서는 1924년 모든 미국 원주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인디언 시민권법'에 서명하여 소수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진보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928년 재선 출마를 스스로 거부하고 퇴임한 쿨리지는 1933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의 시기로 기억되지만, 일각에서는 그의 방임주의 정책이 훗날 대공황의 단초가 되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 그의 정치 철학은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중요한 사상적 토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