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은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의 팽창과 근대화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교차하던 해이다. 서구 열강은 산업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교통과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며 세계 곳곳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조선 역시 1876년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전통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와 외교적 노력을 시도했던 중요한 시기였다.
조선에서는 외교적인 다변화와 서구 시찰 목적의 사절단 파견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결과로, 1883년 조선 정부는 미국에 전권대사 민영익을 비롯한 보빙사(報聘使) 일행을 파견했다. 이는 조선이 서양 국가에 보낸 최초의 외교 사절단으로, 이들은 미국의 대통령 체스터 아서를 예방하고 미국의 근대적 시설을 시찰한 뒤 귀국하여 조선의 개화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 해에 조선은 영국(조영수호통상조약), 독일(조독수호통상조약)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도 잇달아 통상 조약을 체결하며 서구 열강 중심의 국제 사회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국내적으로는 근대화를 위한 다양한 국가 기관과 제도가 신설되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고종은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갈 때 고안하여 사용했던 태극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제정 및 공포하였다. 아울러 근대적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전환국(典圜局)이 설치되었고, 근대식 인쇄소이자 출판 기관인 박문국(博文局)이 설립되었다. 박문국에서는 그해 10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를 창간하여 관보의 성격으로 열흘마다 발행하며 서양의 정세와 새로운 지식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다. 통역관 양성을 위한 최초의 근대식 영어 학교인 동문학(同文學)이 설립된 것도 이 해의 일이다.
세계사적으로 1883년은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로 인류 역사에 깊이 각인된 해이다.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이 폭발은 기록된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화산 폭발 중 하나로 꼽힌다. 화산 폭발음은 약 4,800km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로 거대했으며, 폭발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가 인근 해안을 덮쳐 3만 6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대기 중으로 방출된 엄청난 양의 화산재는 지구의 태양광을 차단하여 이후 수년 동안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을 떨어뜨렸고, 세계 곳곳에서 기이하고 붉은 저녁노을이 관찰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기술과 문화, 그리고 사상적 측면에서도 1883년은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미국 뉴욕에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던 브루클린 다리가 14년의 공사 끝에 5월 24일 개통되어 근대 토목공학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남았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파리와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잇는 고급 장거리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이 10월 4일 첫 운행을 시작하여 유럽 대륙의 교통과 문화 교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편, 사상사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시한 카를 마르크스가 3월 14일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으며, 독일의 낭만주의 오페라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2월 13일 세상을 떠나는 등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죽음이 이어진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