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은 조선 왕조 말기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하며 전국적인 농민 봉기가 일어난 해였다. 경상도 진주에서 시작된 임술농민봉기는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관료들의 착취와 부정부패를 견디지 못한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저항이었다. 이 봉기는 삼남 지방을 넘어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으며, 조선 정부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세금 제도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지배 구조와 토지 문제의 해결 없이는 민중의 고통을 완전히 해소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미국에서는 연방의 존립을 건 내전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1862년 9월에 발생한 앤티텀 전투는 미국 내전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희생자가 많았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북군이 남군의 북진을 저지하는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의 결과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의 예비 공포를 발표하는 정치적 배경이 되었다. 이는 전쟁의 목적을 단순한 연방 유지를 넘어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인권의 수호로 격상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프로이센의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수상으로 취임하며 독일 통일의 서막을 열었다. 비스마르크는 의회 연설에서 국가의 중대한 문제는 말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철(Iron)'과 '혈(Blood)', 즉 군비 확장을 통한 군사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철혈 정책'을 천명했다. 그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프로이센은 군사 강국으로 거듭났으며, 이는 장차 유럽의 세력 균형을 재편하고 독일 제국이 성립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문화와 과학 분야에서도 역사적인 이정표가 세워진 해였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불평등을 다룬 대작 '레 미제라블'을 출간하여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과학계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 살균법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미생물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이는 식품 보존 방식과 공중보건 의학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인류의 수명 연장과 위생 환경 개선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발견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