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1858년은 동아시아 외교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제2차 아편 전쟁이 진행되던 중 청나라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과 각각 톈진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으로 인해 외국 공사의 베이징 주재와 기독교 포교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10개의 항구가 추가로 개항되었다. 같은 해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는 아이군 조약이 체결되어, 러시아는 아무르강(흑룡강) 이북의 영토를 획득하며 극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인도에서는 1857년에 발발한 세포이 항쟁이 영국의 진압으로 마무리되었다. 영국 의회는 인도 통치법(Government of India Act 1858)을 통과시켜 기존에 인도를 관리하던 동인도 회사의 모든 권한을 박탈하고 통치권을 영국 왕실로 직접 귀속시켰다. 이로써 인도는 영국 국왕이 통치하는 직할령인 인도 제국으로 재편되었으며, 이는 대영제국의 식민 지배 체제가 더욱 체계적이고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계와 기술 분야에서도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다.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런던 린네 학회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공동으로 발표하여 현대 생물학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해저 전신 케이블이 완공되어 유럽과 북미 대륙 간의 통신이 가능해졌다. 비록 기술적 한계로 인해 얼마 못 가 작동이 중단되었으나, 이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보 통신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일본과 미국 사이에는 일미수호통상조약(해리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 체결을 주도한 에도 막부는 이로써 쇄국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본격적인 개항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관세 자주권 상실과 영사재판권 허용 등을 포함한 이 불평등 조약은 일본 내부에서 막부 반대 세력을 결집시켰으며, 이는 훗날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대적인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에서는 철종 재위 9년째를 맞이하여 안동 김씨 일가에 의한 세도정치가 정점에 달해 있었다. 권력의 사유화로 인해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면서 농민들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의 패배 소식과 이양선의 빈번한 출몰로 인해 서구 열강에 대한 경계심과 위기감이 높아졌으며, 이는 내부적인 사회 불안 요소와 결합하여 향후 발생할 대규모 민란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