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년은 18세기의 20년대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그레고리력으로는 금요일, 율리우스력으로는 화요일에 시작된 해이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절대왕정이 공고히 유지되는 가운데, 새로운 근대적 가치관과 과학적 사고가 서서히 태동하던 전환기적 시점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내부적인 권력 구조의 재편과 체제 정비를 통해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성년이 되어 섭정 정치가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친정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프랑스 왕실의 권위 재확립과 유럽 외교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영국에서는 로버트 월폴이 사실상의 초대 총리로서 내각 책임제의 기틀을 닦으며 의회 정치의 발전을 이끌고 있었다. 지적 측면에서는 경제학의 시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미생물학의 선구자인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생애를 마감하며 과학사의 한 장을 넘겼다.
조선에서는 경종 3년에 해당하는 해로, 노론과 소론 사이의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신임사화의 여파로 인해 정국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이었으며, 연잉군(훗날의 영조)의 지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민생 안정을 위한 대동법의 시행 확대와 군역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이는 18세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지배층의 노력을 보여준다.
청나라에서는 옹정제가 즉위한 지 첫 번째 해를 맞이하여 황권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옹정제는 강희제 시기의 관료적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지정은제를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일본의 에도 막부에서는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교호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는 막부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검약령을 선포하고 실학 장려와 세제 개편을 통해 통치 체제를 재정비하는 데 전념했다.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음악 감독(칸토르)으로 부임하여 이후 그의 수많은 걸작이 탄생하게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보스턴을 떠나 필라델피아에 정착하며 그의 다방면에 걸친 활동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1723년은 세계사의 각 지역이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걸으면서도, 다가올 근대 사회의 맹아를 품고 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