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년은 통일 신라 성덕왕 22년에 해당하는 해로, 신라의 사회 경제적 체제 정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시기이다. 이 해 신라 조정은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정전(丁田)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이는 국가가 농민의 토지 점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조세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백성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정전제의 실시는 자영농의 기반을 공고히 하여 신라 전성기의 경제적 안정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책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의 겐쇼 천황 재위기였으며,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대한 법령이 공포되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과 공지공민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새로 황무지를 개간한 자에게 해당 토지를 3대 혹은 본인 당대에 한해 사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는 초기 단계의 조치로 평가받으며, 훗날 장원 제도가 발달하는 시초가 되었다.
당나라에서는 현종의 치세인 개원(開元) 연간의 전성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현종은 이 시기 행정 조직을 정비하고 군사 체계를 보완하며 당의 국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이 태평성대는 동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신라와 일본 등 주변국들은 당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선진 문물을 수용하였다. 특히 불교와 유교 중심의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동질성이 더욱 강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베네딕토회 수도사였던 성 보니파시오가 독일 헤센주 지역에서 게르만족이 신성하게 여기던 '도나르의 오크(Thor's Oak)'를 벌채하였다. 이 사건은 게르만 이교 신앙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교가 게르만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보니파시오의 이러한 활동은 중세 유럽의 종교적 지형을 변화시켰으며, 프랑크 왕국과의 협력을 통해 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우마이야 왕조의 제9대 칼리파 야지드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723년에 야지드 2세는 이슬람 영역 내의 그리스도교 성상들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슬람 교리에 따른 우상 숭배 금지 원칙을 강화한 조치였으며, 동시기 비잔티움 제국에서 일어난 성상 파괴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중앙아시아 방향으로의 세력 확장을 지속하던 우마이야 왕조는 소그디아나 지역에서 투르크 세력과 충돌하며 영토 분쟁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