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년은 18세기의 18번째 해이자 평년으로, 목요일에 시작된 해이다. 서구권에서는 제국주의와 절대왕정의 시대가 지속되던 시기였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와 조선이 각각 강희제와 숙종의 치세 하에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해는 유럽의 세력 판도가 재편되는 여러 전쟁과 조약이 체결된 시기였으며, 북미 대륙의 식민지 확장과 과학적 발견이 동시에 이루어진 시점이기도 하다.
조선은 1718년 숙종 44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숙종은 건강이 악화되어 국정을 직접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이에 따라 왕세자(훗날의 경종)가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정무를 분담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훗날 왕위 계승 문제와 결부되어 전개되는 대규모 정쟁의 전조가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전후 복구와 대동법의 안착 등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대북방전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1718년 11월 30일, 스웨덴의 국왕 카를 12세가 노르웨이의 프레드리크스텐 요새를 포위 공격하던 중 전사하였다. 전장을 누비던 '북방의 사자' 카를 12세의 죽음은 스웨덴의 강대국 지위를 상실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발트해의 패권이 러시아 제국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 이후 스웨덴 내에서는 절대 왕정이 약화되고 의회 정치가 발흥하는 '자유 시대'가 개막되었다.
발칸반도와 남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베네치아와 오토만 제국 간의 전쟁을 종결짓는 파사로비츠 조약이 7월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합스부르크 군주국은 벨그라드를 포함한 세르비아 북부와 테메슈바르 바나트 지역을 획득하며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반면 오토만 제국은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이는 유럽 세력 간의 힘의 균형이 합스부르크 측으로 기우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뉴올리언스가 건설되었다.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총독이었던 장바티스트 르 모인 드 비엔빌이 미시시피강 하구에 정착지를 조성한 것이 시초였으며, 이는 향후 북미 대륙 내 프랑스 영향력 확대의 거점이 되었다. 한편 과학 분야에서는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별들의 고유 운동을 발견하여 우주가 정적인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등 학술적인 진보도 이루어진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