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1년은 17세기의 91번째 해이며, 그레고리력 기준으로 월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이 시기는 근세 유럽의 권력 재편과 아시아의 제국적 확장이 맞물리던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영토 분쟁과 종교적 갈등이 지속되었으며, 과학 혁명의 흐름 속에서 주요 인물의 부침이 발생한 해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윌리엄 전쟁(Williamite War)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7월 12일,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어그림 전투(Battle of Aughrim)에서 윌리엄 3세의 군대가 제임스 2세의 자코바이트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자코바이트 세력의 저항 의지를 꺾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10월 3일에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이 체결되어 아일랜드 내의 군사적 분쟁이 일단락되었고, 잉글랜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대륙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아우크스부르크 동맹 사이의 9년 전쟁이 계속되었다. 프랑스군은 4월에 전략적 요충지인 몽스(Mons)를 점령하며 군사적 우위를 점했으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각국의 재정 부담은 가중되었다. 같은 해 8월 19일, 발칸 반도에서는 슬랑카멘 전투가 벌어져 합스부르크 군대가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했다. 이 승리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팽창을 저지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유럽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청나라와 조선의 정치 정세가 안정과 갈등을 반복했다. 청나라의 강희제는 고비 사막 남쪽의 돌론 노르(Dolon Nor)에서 몽골의 할하 부족 영주들과 회맹을 가졌다. 이를 통해 청나라는 외몽골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준가르 세력을 견제할 발판을 마련했다. 조선에서는 숙종 17년에 해당하며, 기사환국 이후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가운데 인현왕후의 폐위와 장희빈의 왕비 책봉에 따른 정치적 여파가 지속되었다.
과학 및 문화계에서는 근대 화학의 선구자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이 12월 30일에 사망했다. 보일은 실험적 방법을 통해 기체의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설명하는 '보일의 법칙'을 정립했으며, 그의 죽음은 과학 혁명기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다. 한편, 북미 식민지에서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와 플리머스 식민지가 통합되어 매사추세츠만 직할령을 형성하는 새로운 국왕 칙령이 공포되어 식민지 행정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