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

1688년은 17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해로, 세계사적으로 근대 정치 체제의 기틀이 마련되고 주요 국가들의 세력 지형이 요동친 결정적인 전환점 중 하나다. 이 해에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은 영국에서 발생한 명예혁명이며, 이를 통해 절대왕정이 저물고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조선, 청나라, 일본이 각각 내부적인 정치 구조 개편과 문화적 발전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영국에서는 국왕 제임스 2세의 전제 정치와 친가톨릭 정책에 반발한 의회가 네덜란드의 총독 오라녜 공 빌럼(윌리엄 3세)과 그의 아내이자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에게 왕위를 제안하면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 일어났다. 1688년 11월, 윌리엄의 군대가 잉글랜드 남부에 상륙하자 제임스 2세는 저항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의미에서 '명예혁명'이라 불리며, 이듬해 권리장전이 통과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근대 의회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팽창 정책이 극에 달하여 대동맹 전쟁(Nine Years' War, 1688~1697)이 발발했다. 1688년 9월 프랑스군이 라인강 유역의 팔츠 선제후국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프랑스의 패권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신성 로마 제국, 네덜란드, 에스파냐, 스웨덴 등이 결성한 아우크스부르크 동맹과 프랑스 간의 대규모 국제전으로 비화하였다. 영국의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가 영국의 국왕으로서 대동맹에 합류하게 되면서 유럽의 세력 균형은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한편 한국사에서 1688년은 조선 숙종 14년에 해당하며, 훗날의 정치적 대격변을 예고하는 중요한 해였다. 이 해 10월(음력), 숙종의 총애를 받던 소의 장씨(훗날의 희빈 장씨)가 왕자 이윤(훗날의 경종)을 출산했다. 오랫동안 후사가 없던 숙종에게 첫 아들의 탄생은 큰 경사였으나, 이 왕자를 원자로 정하는 문제와 장씨의 빈(嬪) 책봉을 둘러싸고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서인과 야당 격이었던 남인 사이에 극심한 정치적 대립이 시작되었다. 이 갈등은 이듬해인 1689년 서인이 대거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는 기사환국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역시 군주제의 안정기 속에서 각자의 치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청나라는 강희제가 통치하며 타이완을 복속시킨 이후 영토 확장과 내치 안정을 도모하던 전성기였고, 일본은 에도 막부의 제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지배하에 경제와 대중문화가 번성하는 겐로쿠 시대(元禄時代)의 초입에 있었다. 지성사적으로는 전년도인 1687년에 출간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유럽 지식인 사회에 본격적으로 전파되며, 1688년을 기점으로 근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사상이 태동하는 지적 토대가 굳건히 다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