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2년은 근대사에서 정치, 과학, 지리적 발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중요한 사건들이 집중된 해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기존의 봉건적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근대적 가치관과 과학적 사고가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잉글랜드 내전의 발발과 과학 혁명의 주역들이 교차하는 지점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정치적으로 1642년은 잉글랜드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다. 찰스 1세와 의회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8월 22일 찰스 1세가 노팅엄에서 기치를 올림으로써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무력 충돌이 개시되었다. 이 전쟁은 향후 잉글랜드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의회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의 토대를 마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유럽 전역의 정치 체제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과학사적 측면에서 1642년은 한 세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상징한다. 근대 관측 천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탈리아에서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영국에서는 고전 역학의 완성자인 아이작 뉴턴이 태어났다. 이는 과학 혁명의 주도권이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에서 영국과 네덜란드 등 북서부 유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해로 평가받는다.
기술과 수학 분야에서는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이 세계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인 '파스칼린'을 발명했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의 업무를 돕기 위해 고안된 이 장치는 톱니바퀴의 회전 원리를 이용하여 덧셈과 뺄셈을 수행할 수 있었다. 비록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으나, 이는 훗날 컴퓨터 과학과 계산 기술 발전의 선구적인 발자취가 되었다.
지리적 탐험 분야에서는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만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후원을 받아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현재의 타스메이니아 섬과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타스만의 항해는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대륙이었던 오세아니아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 지도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의 쇠퇴와 청나라의 부상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명나라는 내부의 농민 반란과 만주족의 압박으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었으며, 이는 2년 뒤인 1644년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중원 진출로 이어지는 전조가 되었다. 한편 티베트에서는 제5대 달라이 라마가 겔룩파의 수장으로서 정치와 종교의 전권을 장악하며 강력한 신권 통치 체제의 기틀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