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년은 동아시아와 세계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한반도에서는 삼국 간의 항쟁이 극에 달하며 권력 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났고, 중동에서는 이슬람 세력의 팽창으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몰락의 길로 접어드는 등 거대한 정세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한반도 삼국은 각국 내부의 정변과 영토 분쟁을 겪으며 이후 통일 전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외교 및 군사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당시 대당 온건책을 펼치던 영류왕과 귀족들이 자신을 제거하려 하자, 연개소문은 이들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한 뒤 스스로 막리지의 자리에 올랐다. 이 정변으로 고구려는 당나라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이는 훗날 여당 전쟁이 발발하는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연개소문의 집권은 고구려 내 체제 결속을 가져왔으나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도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졌다. 백제의 의자왕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포함한 4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특히 대야성 전투에서 신라의 성주 품석과 그의 아내이자 김춘추의 딸인 고타소랑이 전사했다. 이 사건은 신라 수뇌부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김춘추가 백제에 복수하기 위해 고구려와 당나라를 차례로 방문하며 외교적 활로를 모색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신라의 김춘추는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려로 건너가 연개소문과 동맹을 협상했다. 그러나 고구려 측은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죽령 이북의 영토 반환을 요구하며 이를 거절했고, 김춘추를 감금하기까지 했다. 김춘추는 고구려 관리 선도해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으나, 이 실패로 인해 신라는 고구려와의 연대를 포기하고 당나라와 결탁하는 나당 동맹의 길로 선회하게 되었다.
세계사적으로는 이슬람 세력의 확장이 두드러진 시기였다. 니하완드 전투에서 정통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군대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주력 대군을 격파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를 사실상 결정지었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이슬람 군대에 내주며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동부의 지배권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조메이 천황의 뒤를 이어 고교쿠 천황이 즉위하며 소가 씨 가문의 권세가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