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년은 조선 선조 20년, 명나라 만력 15년, 일본 덴쇼 15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동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기존 질서가 요동치고 새로운 갈등이 표면화된 시기로 평가받는다. 특히 한반도 주변에서는 일본의 통일 세력이 대륙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서구권에서는 종교와 정치적 갈등이 국가 간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조선에서는 북방의 여진족 침입이 빈번해지며 국경 수비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 해 가을, 조산만호로 재직 중이던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여진족의 습격을 받아 전투를 치렀다. 이 녹둔도 전투에서 이순신은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곧바로 반격하여 포로들을 구출하는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북병사 이일의 무고로 인해 이순신은 첫 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한편,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쓰시마 섬의 소 요시시게를 통해 조선에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며 향후 전개될 임진왜란의 전조를 형성했다.
일본 열도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규슈 정벌을 단행하여 시마즈 가문을 굴복시키고 서일본 지역의 장악을 완료했다. 이로써 전국 시대의 종결이 가시화되었으며, 히데요시는 같은 해 6월 '바테렌 추방령'을 공포하여 기독교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포교를 금지했다. 이는 봉건 영주들이 기독교를 통해 외부 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조치였다. 또한 그는 교토에 주라쿠다이를 완공하여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며 일본 전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중국 명나라에서는 만력제의 통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역사학자 레이 황은 자신의 저서에서 1587년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표면적으로는 큰 사건이 없는 평범한 해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관료 사회의 경직성과 만력제의 태업이 맞물리며 명나라 제국 시스템이 안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해였기 때문이다. 장거정 사후 개혁 동력을 상실한 명나라는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이는 훗날 만주족의 대두와 함께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대변동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해상 패권 다툼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전 여왕이자 가톨릭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했다. 이 사건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또한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스페인의 카디스 항을 습격하여 무적함대의 원정 준비에 타격을 입히는 등, 대서양을 둘러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며 이듬해 발생할 무적함대 대전의 서막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