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

1536년은 율리우스력으로 토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다. 이 해는 세계사적으로 종교 개혁의 흐름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이자, 동아시아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거두가 탄생하여 사상사의 새로운 장을 예고한 해로 기록된다. 또한 신대륙에서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과 이에 맞선 원주민의 저항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에서는 장 칼뱅(John Calvin)이 개신교 신학의 체계를 세운 불후의 명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초판을 스위스 바젤에서 출판했다. 이 저술은 루터교와 구별되는 칼뱅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 전역과 세계 기독교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같은 해 인문주의의 왕이라 불리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사망함으로써 르네상스 인문주의 시대의 한 챕터가 저물기도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튜더 왕조의 헨리 8세가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을 간통 및 반역 혐의로 런던 탑에서 참수하고, 곧이어 제인 시무어와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하며 왕실의 종교적, 정치적 격동이 이어졌다.

조선왕조 역사에서 1536년(중종 31년)은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가 강릉 오죽헌에서 탄생한 해로 매우 중요하다.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난 이이는 훗날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게 되며,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여 조선의 철학 사상을 심화시켰다. 그는 단순한 학자를 넘어 십만양병설과 같은 국방 강화책과 다양한 사회 개혁안을 제시하는 정치가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의 탄생은 조선 중기 이후의 정치와 학문 풍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스페인의 정복 활동이 확장됨과 동시에 원주민의 최후 반격이 있었다. 스페인의 탐험가 페드로 데 멘도사가 리오데라플라타 강 하구에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한편 페루에서는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옹립했던 잉카의 황제 만코 잉카 유팡키가 스페인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그는 쿠스코를 포위하며 스페인군을 위기에 몰아넣었으나 끝내 패퇴하여 빌카밤바에 신잉카국(Vilcabamba)을 세우고 저항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1536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구시대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과 체제가 태동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띠었다. 서양에서는 종교적 교리가 체계화되어 근대적 신앙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동양에서는 유교 철학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는 실천적 지성이 태어났다. 지리적으로는 유럽의 팽창이 남미 깊숙이 침투하며 세계사의 무대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충돌과 융합이 발생했던 역동적인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