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1년은 조선 중종 26년에 해당하는 해로, 조선의 인문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 완성된 시기이다. 이 책은 성종 시대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보완하고 수정하여 총 55권으로 펴낸 것으로, 조선 전기 지리학의 집대성으로 평가받는다. 정치적으로는 김안로가 유배에서 복귀하여 권력을 장악하며 조정 내에 긴장감이 감돌던 시기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의 갈등이 심화되며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스위스에서는 가톨릭을 지지하는 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주들 사이의 제2차 카펠 전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의 주요 종교 개혁가 중 한 명인 울리히 츠빙글리가 전사했다. 그의 죽음은 스위스 개신교 세력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독일에서는 개신교 제후들이 카를 5세 황제에 맞서기 위해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하며 종교적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의 정복자 프랑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정복하기 위한 세 번째 원정을 시작했다. 피사로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파나마를 떠나 페루 연안에 상륙했으며, 이는 훗날 잉카 제국이 멸망하고 스페인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잉카 제국은 내전과 전염병으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어 있어 스페인의 침략에 취약한 상태였다.
자연재해와 천문 현상 측면에서도 중요한 기록이 남아 있다. 1531년 1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지진은 당시 유럽 사회에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또한 이 해에는 훗날 핼리 혜성으로 명명된 혜성이 지구 근처를 지나갔으며,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와 독일의 페트루스 아피아누스는 혜성의 꼬리가 항상 태양의 반대 방향을 향한다는 사실을 관측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태국(당시 아유타야 왕국)과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왕권의 교체와 영토 확장을 위한 분쟁이 지속되었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퉁구 왕조의 타빈슈웨티가 즉위하여 버마 전역을 통일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1531년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갈등과 변화가 시작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