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3

1523년은 율리우스력으로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6세기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유럽의 종교개혁과 왕조 교체,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 질서 재편,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화 등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해이다.

유럽 역사에서 1523년은 북유럽 정치 지형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해로 기록된다. 6월 6일, 구스타브 1세 바사(Gustav I Vasa)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1397년 이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국을 묶고 있던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고, 스웨덴은 완전한 독립 국가로서 바사 왕조 시대를 열게 되었다. 같은 해 덴마크에서는 폭정을 일삼던 크리스티안 2세가 폐위되고 그의 숙부인 프레데릭 1세가 왕위에 오르는 등 북유럽 전역에서 권력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스웨덴 국경일은 구스타브 1세의 즉위일인 6월 6일을 기념하여 제정되었다.

서유럽과 중부 유럽에서는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1월 19일에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의 죽음 이후, 메디치 가문 출신의 줄리오 디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클레멘스 7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황에 선출되었다. 그는 이후 유럽의 세력 균형과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톨릭 교회를 이끌게 된다. 또한 신성 로마 제국 내부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어났던 기사 전쟁(Knights' Revolt)이 주동자인 프란츠 폰 치킹겐의 전사와 함께 진압되며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제국 내 하급 귀족 기사 계층의 군사적, 정치적 몰락을 확정 짓는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의 항구도시 영파(寧波, 닝보)에서 일본의 두 다이묘 가문인 호소카와 가문과 오우치 가문의 사절단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진 '영파의 난(닝보의 난)'이 일어났다. 감합부(명나라가 허락한 무역 증명서)를 둘러싸고 조공 무역의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이 무력 사태로 인해 명나라 관료와 민간인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이에 격노한 명나라 조정은 일본과의 공식적인 교역을 중단하고 무역 통제 기구인 시박사를 폐지하는 강경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무역로를 잃은 상인들이 밀무역에 나서게 만들며 16세기 중반 왜구가 득세하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한국사에서 1523년은 조선 중종 18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조선 조정은 1519년에 발생한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파가 대거 숙청된 이후, 남곤과 심정 등 훈구파와 온건파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여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다. 중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523년에는 전국 각지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전염병이 돌았으며 가뭄과 우박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여 민생이 몹시 피폐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변방의 여진족과 왜구의 동태를 살피며 국방을 정비하는 데 주력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아스텍 제국이 멸망(1521년)한 이후 스페인의 정복 사업이 주변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1523년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는 코르테스의 명령을 받아 과테말라 지역의 마야 문명계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한 원정을 시작했다. 이 원정은 중미 지역 원주민 국가들의 멸망과 스페인 식민 제국 확장에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